투자자/투자일기

경기민감주의 페달, 수출동향 알아보기 (feat. 롯데케미칼 매도보고서)

나그네_즈브즈 2021. 6. 11. 10:02

우리나라에서 경기민감주 투자가 그나마 쉬운 점이 있다. 코스피 지수는 수출실적과의 상관계수가 아주 높아서다. 수출실적은 주가의 엑셀러레이터(가속페달)도 되고 브레이크도 된다. 특히, 한국의 월별 수출입 동향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면서도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수출입 동향은 한 달에 세 차례 발표된다. 매월 10일과 20일 관세청 홈페이지 보도자료 탭에 공개되는 것이 있고, 매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에 역시 보도자료로 발표되는 것이 있다.

지난 달에 정유, 화학, 건설/기계 부문의 경기민감주를 한꺼번에 매수했었다.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수출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판단해 매수했기 때문에, 업황이 부러지는가의 여부가 매도시점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매수 전 탐색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보유기간 중에도 꾸준히 업황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어제 골드만삭스에서 롯데케미칼의 목표주가를 22,000원으로 하향해 매도의견으로 보고서를 냈다. PE/PP 제품의 실적이 1분기를 지나며 피크아웃될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보유자로서 이 쟁점도 뜯어볼 필요가 있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수출입 자료도 소개할 겸 해서, 오늘은 그런 내용을 포스팅으로 정리해 보겠다.

 

매월 1일 관세청이 발표하는 월별 수출입동향 보도자료에는 원본 데이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분석도 다양하게 제공되어 있어서, 숫자와 도표 등의 기계언어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업황과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또 매년 12월 자료가 올라올 때에는 연간 실적도 함께 정리돼 보고된다. 이 자료들이 주로 다루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정부에서 지정한 15대 수출품목의 실적과 전년 동기대비 증감률이다. 2021년은 겨우 5개월 지났고 이것만으로는 경향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2017년까지의 모든 자료를 긁어모아 시계열로 나타내 봤다.

 

 

어흑. 반도체의 높은 절대량 때문에 다른 업종은 모두 노멀라이즈(상대적 비교)되어 알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품목이 15개나 되다보니 혼란이 더 가중된 탓도 크다. 반도체 수출실적이 2019년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머지를 쪼개어 볼 필요가 있겠다. 잠자리의 눈을 탑재하고, 최근 1년 회복되고 있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을 구분해 봤다.

 

기계,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석유제품은 지난 해 코로나19 타격 이후 상황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정부 발표에서는 YoY 기준으로 업/다운이 표현되는 탓에,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회복여부는 이렇게 해야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회복 모멘텀이 앞으로도 이어질지를 차트가 말해 줄 수는 없다.

 

석유제품(S-OIL 소속)은 갓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업종의 호조세와 키 맞추기를 하려면 위쪽이 조금 더 열려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학(롯데케미칼) 제품의 실적 피크아웃은 공급과잉 우려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 동네의 매출은 수요(GDP 성장 × 생활패턴)에 더 크게 의존한다고 애널리스트들은 의견을 모은다. 생활소비재가 되는 최종 소비단 앞에서 산업재 역할을 하는 PE/PP의 수요 증가는 여전히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 같다. 의류의 소비재가 되는 PET도 마찬가지다. 성장주와 달리 경기민감주는 그렇게까지 멀리 있는 미래 실적을 현재 가치로 당겨오지는 않는 것 같다. 매월, 매주 실적이 정리되고 발표되는 동네라 그렇다고 본다.

 

물론 많은 기업들이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 이들 경기민감주들은 업종별로 대장주가 확실해서 좋다. 철강은 POSCO와 현대제철, 자동차는 현대차그룹으로 일단 정리하자.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 업종에서 상장된 곳은 SK이노베이션과 S-OIL 두 곳 뿐이다. 여기서 SK이노베이션은 2차전지 섹터로 더 강하게 분류된다. 효성중공업을 담기는 했지만 기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석유화학 제품과 관련된 굵직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많다. 제품이 다양해서 그런 것 같다. 롯데케미칼, 금호석유, LG화학, 한화솔루션, 효성티엔씨 등이 생각난다.

 

석유화학 제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간단한 거니까 이 기회에 외워보자. 플라스틱, 섬유, 고무다. 고무는 금호석유(타이어)에서 만들고, 섬유는 효성티엔씨(스판덱스)를 기억하면 간단하다. 플라스틱 세계에는 또 몇 가지 세부 분류가 있다. 건설자재로 쓰이는 PVC는 한화솔루션의 주력 제품이다. 차량, 가전제품 등 완성 내구소비재가 되는 ABS는 LG화학이 신경써서 만드는 품목이다. 화학제품의 '쌀'로 비유되는 PE(폴리에스테르)/PP(폴리프로필렌) 는 다른 2차, 3차 제품을 가공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롯데케미칼의 컬러라고 할 수 있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실적 피크아웃보다 화학 업종에서 내가 더 걱정하는 건 두 가지다. 성장이 끝난 산업의 침체와 대형 공해시설로 인한 ESG 평가 부담이다. 기업별로 이러한 우려를 씻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LG화학은 2차전지가 친환경 자동차와 연결되며 두 가지 아킬레스 건을 한 번에 겨냥했다. 태양광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화솔루션도 그렇다. 롯데케미칼은 SK가스와 손을 잡고 수소 생태계 개척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롯데케미칼을 매도해야 할 정도로 보지는 않는다. 목표가를 제시하라면 말문이야 막히겠으나, 월별 수출지표가 YoY로 부러지면 그때 정리를 고민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나머지 비주류(?) 주요품목의 추이는 위와 같다. 조선은 올해 뜨거웠지만, 최근 2개월은 상대적으로 식어서 이쪽으로 넣었다. 자동차부품은 차트 상 고개를 들고 있는데, 자동차 섹터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주류로 넣지 않았다. 주식시장에 추가로 큰 자금이 드나들지 않는다는 가정이라면, 앞으로는 업종과 섹터 사이에서 순환매가 돌 수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경기민감 업종에서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나로서는 현재 아이디어도 없고 여윳돈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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