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내 소개를 하게 될 때는 사진이 취미라고 슬그머니 고백하기도 한다. 사실은 이 블로그도 원래 사진에 대한 개인적인 수다 공간이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이 주제에 프랙탈 같은 성격이 있다. 관점에 따라 위치에 따라 여건이라든가 경험이나 계획에 따라 느껴지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나눌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 덤볐는데, 오히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더 많다.
사진 찍는 도구에 대해 방황이 길었었고,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사진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 느꼈다.
카메라나 렌즈야 늘 신제품이 나오지만, 광고로부터 떨여져 지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따금 다른 장비에 마음이 기웃거려질 때면 읽었던 글을 다시 읽기도 했다.
요즘도 리코의 GR3x를 눈여겨 본다. 여차하면 캐논 똑딱이와 필름카메라 세트까지 팔아버릴 기세다. 그러는 김에 나름 해를 넘기며 이제 겨우 실루엣을 만들기 시작한 ‘배운’ 사진 철학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사진에 느낌을 담는 여덟 가지 방법」은 모리 타카시 아니, 스가와라 이치고가 쓴 가볍고 따뜻한 책이다. 취미 사진가들을 위해 썼다고는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들은 모든 수준의 사진가들에게 깊이 박힐 만하다.
제목에서처럼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마음이 ‘반드시’ 담긴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읽었을 때는 책 팔아먹으려고 별 개떡같은 소릴 다 한다 싶었다. 구글 이미지와 인스타그램이나 사진 동호회 카페에 넘쳐나는 사진들을 만나도 고운 빛깔만 닿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내가 찍은 내 사진에서조차 내 마음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마음’이라는 게 없었는지도 몰랐다.
마음이 없는 취미사진가는, 무엇을 찍을지 고민했다. 10년 20년 몰입할 만한 주제라는 담론에 빠져들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봐야 사진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주워 듣고서였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다양한 모습을 가진 것, 평범한 것, 말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것, 그러면서도 사진가가 특히 좋아하는 것이 사진의 주제로 적당하다고 배웠다. 나는 좋아하는 게 없었다.
사진집 「윤미네 집」을 빌려 봤을 땐 몰랐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내 책꽂이에서 내 「윤미네 집」을 꺼내 보고는 저녁 내내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좋아서 울어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항상 내 곁에 있고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말로는 설명하기 불가능한 대상이. 나는 올해 찍은 사진을 모두 모아놓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일부를 골라 처음으로 출력을 해봤다. 대부분이 아내 사진이었거나 그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머리 말리는 모습, 머리 말리는 모습, 나하고 이야기하다 빨개진 눈으로 우는 모습, 드라마 보다 눈물 닦는 모습, 포도 먹는 모습, 돌아누워 자는 모습, 예쁜 척하는 모습, 예쁜 모습, 그녀가 널어둔 빨래, 그녀와 걷던 길, 우리가 다녀온 식당, ...
이 사진들을 볼 때마다, 일요일 저녁 「윤미네 집」 책장을 넘기던 순간의 마음이 오버랩된다. 똑같지는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 신기하게도 사진에서 내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평생 찍어도 모자랄 내 사진 내 주제를 그렇게 발견했다. 심오하지도 않고, 누가 보아도 감탄할 아름다움도 아니고, 예술은 더더욱 모르겠다. 그래서 차라리 훨씬 다행스럽다. 삶 속에 사진이 있다는 육명심 선생님의 메시지를 비로소 조금 알아듣는 것도 같다.
사진은 뺄셈이라고들 얘기한다. 흔히 구도나 렌즈의 화각 이야기를 할 때 인용되는 등식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사각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 만큼이 아닌 세상의 나머지 전부를 관심 밖으로 덜어낸다.
사진이 공간적으로 35mm×24mm 사각형의 안팎에 관한 것이라면, 시간적으로는 빛을 잘라내는 1/125초 정도의 앞과 뒤 그리고 그 사이에 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진의 뺄셈은 시간 축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사진가는 하필 그 자리에서 왜 굳이 그 피사체를 선택하는가? 길고 긴 시간 가운데, 어째서 그 순간의 1/125초였어야 하는가? 많고 많은 주제들 속에서 당신의 ‘그것’이라야 하는 당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것은 사진가가 결정한다. 결정은, 마음의 반응이다.
마음이라는 게 없는 채로 찍은 내 사진에서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듯이, 사실은 세상 그 무엇도 아무 순간도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사진가가 몰입한 주제, 선택한 프레임, 잘라낸 시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사진가로 하여금 그/그녀의 카메라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진 속에 마음이 반드시 담긴다고 하는 데에는, 어쩌면 그런 설명이 생략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 어떤 장면으로 렌즈의 시선이 향했다는 것은 사진가의 마음이 거기 반응했다는 뜻일 테니까. 윤미의 순간들을 잘라낸 아버지의 마음이나 아내의 모습들을 기록한 나의 셔터찬스들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부터는 다른 이의 사진을 마주할 때도 이심전심이 되었다. 이 모습은 어떻게 카메라를 꺼내게 만들었을까. 이 1/125초는 얼마나 특별한 순간이냔 말인가. 그렇게 감탄하면 어쩐지 내 사진도 비슷한 공감과 이해를 허락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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