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사진철학 잡담

220505 어린이날, 아내와 경주 「라이프」지 사진전 관람

나그네_즈브즈 2022. 5. 6. 11:18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사지전을 보러 다녀왔다. 가까이 경주에서 「라이프」지 사진전이 무료로 열리고 있었다. 사진 동호회 단톡방에 공유되며 알게 됐는데, 5월 15일까지인 걸 놓치지 않고 다시 생각해냈다. 아내도, 나도, 사진전은 처음이었다.




사진전이 열리는 경주 예술의전당까지는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는 버스 노선도 다양하다. 터미널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235번을 타서 황성주공 2차에서 내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어린이날 점심시간의 전시실은 기대만큼 조용했다.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라이프」지에 대해, 아내에게 나의 짧디 짧은 토막지식을 들려주었다.




이 사진잡지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 같은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활동했던 가장 위대한 저널이다. (카메라와 세월이 부끄러운 정말 얕은 지식ㅋㅋ) 전시장 입구에 그 철학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글이 우리를 맞이했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to eyewitness great events;
to watch the faces of the poor and the gestures of the proud;
to see strange things - mashines, armies, multitudes, shadows in the jungle and on the moon;
to see man's work - his paintings, towers and discoveries;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he women that men love and many children;
to see and to take pleasure in seeing;
to see and be amazed;
to see and be instructed...

인생을 보기 위해
세계를 보기 위해
위대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가난한 자의 표정과 거만한 자의 몸짓을 관찰하기 위해
신기한 것들 - 기계, 군대, 군중, 정글 속의 그리고 달 위의 그림자들을 보기 위해
인류의 업적들 - 그림과 건축물과 발견들을 보기 위해
수 천 마일 떨어진 것들, 벽 너머와 방 안에 숨겨진 것들, 위험해질 일들, 사랑받는 사람들과 많은 어린이들을 보기 위해
보고, 보는 데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보고 또 놀라기 위해
보고 또 배우기 위해

- 헨리 루스(「라이프」 창간인)


현장에 한글로도 있었지만 이 번역은 내가 직접 해봤다. 두운으로 반복되는 to 부정사의 동사적 의미를 살려서 ‘~기 위해’라는 각운으로 바꾸어 보았다. 마지막의 be amazed는 surprized와 다르게 ‘깜짝 놀라’는 것 보다는 ‘(소름돋으며) 놀라’는 느낌이 있는데, 적당한 표현을 끝내 찾지 못했다.

저렇게 많은 이유나 목적들을 나열한 것을 보면, 아마 이 글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당신들은 왜 사진을 찍습니까?’ 정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렇게 크게 인화된 사진들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흑백 필름사진에서 내가 느끼는 컬러와 계조와 물성에 대해서, 빛과 그림자의 딱딱하고 부드러움에 대해서, 작가의 시선에 대해서 아내에게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지금도 그걸 설명할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지만, 어쨌든 아내와 나는 비슷한 먹먹함을 느꼈다.

전시장에는 100점의 작품이 소개돼 있었다. 처음에는 작품 앞에 한참씩, 나중에는 아주 조금은 서두르는 느낌으로 모두 감상하는 데에 2시간 못되는 시간이 걸렸다.

삶과 죽음, 딱딱한 것과 부드럽지만 강인한 것, 인생, 감정, 춤과 몸짓, 많은 스토리들이 이미지라는 언어로 세월을 건너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울림을 선물했다.




우리는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top pick을 정확하게 예상했다. 3만 원 나가는 도록은 내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지 못해, 천 원짜리 엽서로 만족해야 했다. 전시를 한 차례 더 보고 싶은 것은 그 감동이 대단했기 때문이지, 결코 도록을 사고 싶어서는 아니다.

나는 렌즈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스스로 물어보게 됐다. 뜻밖에도 군더더기가 묻지 않은 선명한 대답이 말끔히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내 인생.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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